고조선부터 판문점까지 한국사 42개 사건, 110개 장면을 지도와 함께 읽는다. 삼국 통일, 후삼국, 거란·몽골 침입, 임진왜란, 3·1 운동, 6·25 전쟁까지.
지도로 처음부터 보기고조선이 무너진 뒤, 한나라 군현과 여러 나라가 오랫동안 함께 지내며 자라났다.
『삼국유사』는 단군왕검이 고조선을 세웠다고 전하지만, 실제 건국 연대와 영역은 학계에서도 의견이 갈린다. 기록이 비교적 분명해지는 것은 기원전 2세기 위만조선부터로, 고조선은 기원전 108년 한나라와의 전쟁 끝에 무너졌다.
고조선이 무너진 뒤 한반도와 만주에는 한나라 군현과 여러 정치 세력이 오랫동안 함께 있었다. 삼국과 가야도 처음에는 이들 가운데 작은 세력에서 출발했다.
1~3세기 동안 고구려는 주변 세력을 아우르며 커졌고, 남쪽 삼한의 작은 나라들 가운데 백제국·사로국·구야국이 점차 두각을 나타냈다.
고구려·백제·신라가 한강과 평양을 두고 다투다, 신라가 당과 손잡고 통일을 이루었다.
4세기에는 백제가, 5세기에는 고구려가 한반도의 주도권을 쥐었다. 두 나라는 한강과 평양을 두고 왕이 전사할 만큼 치열하게 싸웠다.
백제와 신라가 힘을 합쳐 고구려에게서 한강 유역을 되찾았지만, 곧 신라가 백제 몫까지 차지했다. 한강을 얻은 신라는 중국과 직접 통하는 바닷길을 확보했다.
중국을 통일한 수나라와 그 뒤를 이은 당나라가 잇달아 고구려를 침공했지만, 고구려는 살수와 안시성에서 대군을 물리쳤다.
신라는 당과 손잡고 백제와 고구려를 무너뜨렸다. 이어 한반도 전체를 지배하려던 당과 싸워 물리치고, 대동강 남쪽을 하나로 아울렀다.
남쪽의 통일신라와 북쪽의 발해가 나란히 선 남북국 시대. 신라 말에는 나라가 다시 갈라졌다.
고구려 유민 출신의 대조영이 고구려 유민과 말갈 사람들을 이끌고 발해를 세웠다. 남쪽의 통일신라와 함께 남북국 시대가 열렸다.
통일 뒤 안정을 찾은 신라는 수도 경주를 중심으로 불교 문화를 꽃피웠다.
장보고가 완도에 청해진을 세우고 해적을 소탕하며 신라·당·일본을 잇는 바닷길을 장악했다.
왕위 다툼으로 중앙 정치가 흔들리던 신라에서 전국적인 농민 봉기가 일어나고, 지방 호족이 자라나 후삼국 시대로 이어졌다.
후삼국을 통일한 고려는 거란·여진·몽골의 침입을 견디며 500년 가까이 이어졌다.
신라 말 견훤의 후백제, 궁예의 후고구려가 일어나 후삼국 시대가 열렸다. 궁예를 몰아내고 고려를 세운 왕건이 936년 통일을 이뤘다.
거란(요)이 세 차례 고려를 침입했다. 1차 때 서희의 담판으로 강동 6주 설치의 발판을 얻었고, 3차 때 강감찬이 귀주대첩으로 대승했다.
윤관이 별무반을 이끌고 여진을 정벌해 동북 지역에 9성을 쌓았으나, 여진의 거듭된 공격과 간청으로 2년 만에 돌려주었다.
문신 중심의 정치에 불만을 품은 무신들이 정변을 일으켜 권력을 잡았다. 이후 100년 가까이 무신이 고려 정치를 이끌었다.
1231년부터 30년 가까이 몽골이 여러 차례 침입했다. 고려는 강화도로 도읍을 옮겨 버텼고, 개경 환도 뒤 삼별초가 1273년까지 저항했다.
원나라가 기울자 공민왕이 친원 세력을 숙청하고, 99년간 원이 차지했던 쌍성총관부를 무력으로 되찾았다.
새 왕조 조선은 오늘날의 국경을 만들고, 두 번의 큰 전란을 겪었다.
요동 정벌에 나선 이성계가 위화도에서 군대를 돌려 실권을 잡았고, 1392년 조선을 세웠다. 1394년 한양으로 천도했다.
세종 때 압록강 상류에 4군, 두만강 하류에 6진을 설치했다. 오늘날 국경선의 바탕이 이때 마련되었다.
세종이 1443년 창제한 훈민정음을 1446년 반포했다.
1592년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일본군이 조선을 침략하면서 시작된 7년 전쟁. 개전 20일 만에 한양이 함락되었으나 이순신의 수군과 각지 의병, 명군의 참전으로 전세를 뒤집었다.
후금(청)이 두 차례 침입했다. 정묘호란 때 형제 관계를 맺었고, 병자호란 때 인조가 삼전도에서 항복해 군신 관계를 맺었다.
영조와 정조는 붕당의 다툼을 누그러뜨리며 개혁을 펼쳤다. 정조는 아버지 사도세자의 묘를 옮긴 수원에 새 성곽 도시 화성을 쌓았다.
세도 정치로 나라가 어지럽고 평안도 사람들이 차별받던 때, 홍경래가 평안도에서 봉기했다. 청천강 북쪽 여러 고을을 장악했으나 정주성에서 넉 달을 버티다 진압되었다.
프랑스와 미국 함대가 차례로 강화도를 침공했다. 흥선대원군은 이를 물리친 뒤 전국에 척화비를 세워 통상 거부를 분명히 했다.
문을 연 조선은 열강의 각축장이 되었고, 끝내 나라를 잃었다가 되찾는다.
운요호 사건을 빌미로 일본과 맺은 첫 근대적 조약이자 불평등 조약. 부산·원산·인천을 차례로 열었다.
고부 군수의 수탈에 맞서 일어난 봉기가 전라도 전역으로 번졌다. 농민군은 전주성까지 점령했으나, 2차 봉기 때 우금치에서 일본군과 관군에 패했다.
조선을 두고 청과 일본이 맞붙은 전쟁. 일본이 이기면서 청의 영향력이 사라지고 일본의 간섭이 본격화했다.
러시아 공사관에서 돌아온 고종이 황제로 즉위하고 나라 이름을 대한으로 바꾸어, 자주 독립국임을 안팎에 알렸다.
한반도와 만주를 두고 러시아와 일본이 벌인 전쟁. 대한제국은 중립을 선언했으나 일본군이 한반도를 군사적으로 장악했다.
을사늑약으로 외교권을, 정미7조약으로 내정과 군대를 빼앗긴 끝에 1910년 나라를 잃었다.
1919년 3월 1일 독립선언과 함께 전국으로 번진 만세 운동. 같은 해 4월 상하이에서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수립되었다.
만주의 독립군이 일본군과 싸워 거둔 대표적인 승리.
해방과 분단, 전쟁을 지나 산업화와 민주화를 이뤘다.
1945년 8월 15일 광복. 38선을 경계로 미·소 양군이 남북에 주둔했고, 1948년 남북에 각각 정부가 들어섰다.
1950년 6월 25일 북한군의 전면 남침으로 시작되어 1953년 7월 27일 정전협정으로 멈춘 전쟁. 낙동강까지 밀렸다가 인천상륙작전으로 반격, 중공군 개입으로 다시 후퇴한 뒤 현재의 군사분계선 부근에서 고착되었다.
3·15 부정 선거에 맞선 시위가 전국으로 번져 이승만 정부를 무너뜨렸다.
서울과 부산을 잇는 428km 고속도로가 2년 5개월 만에 완공되었다. 산업화와 "일일 생활권"의 상징이 되었다.
1980년 5월 18일부터 27일까지 광주에서 신군부의 계엄 확대에 맞서 일어난 민주화운동.
박종철 고문치사와 4·13 호헌 조치에 맞선 전국적 항쟁으로 대통령 직선제를 얻어냈다.
1988년 9월 17일 개막한 제24회 하계 올림픽. 동서 양 진영이 12년 만에 함께 참가했다.
분단 이후 처음으로 남북 정상이 평양에서 만나 6·15 남북 공동선언을 발표했다.
2018년 4월 27일 판문점에서 남북 정상이 만나 판문점 선언을 발표했다.
지도의 영역·경계는 개략적이며, 고대와 신라 말~후삼국 초의 세력권은 추정입니다. 그림 가운데 '역사 상상도'는 AI로 재현한 이미지로 실제 기록이 아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