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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27~1637 · 후금(청)이 두 차례 침입했다. 정묘호란 때 형제 관계를 맺었고, 병자호란 때 인조가 삼전도에서 항복해 군신 관계를 맺었다.
지도로 보기후금군 3만이 침입하자 인조는 강화도로 피했다. 정봉수·이립 등의 의병이 맞섰고, 후금과 형제 관계를 맺고 화의했다.
왜?누르하치가 세운 후금이 명과 싸우는 동안 광해군은 둘 사이에서 실리적인 중립 외교를 폈다. 1623년 인조반정으로 들어선 서인 정권은 명을 가까이하고 후금을 멀리하는 친명배금 정책을 내세웠고, 후금은 명을 치기 전에 배후의 조선을 먼저 눌러 두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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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 이름을 청으로 바꾼 홍타이지가 직접 12만 대군을 이끌고 왔다. 압록강을 건넌 지 열흘 남짓 만에 한양에 닥치자, 길이 막힌 인조는 남한산성으로 들어갔다.
왜?나라 이름을 청으로 바꾼 홍타이지는 형제 관계를 군신 관계로 바꾸고 막대한 공물을 요구했다. 조정은 화의를 주장한 주화파(최명길)와 끝까지 싸우자는 척화파(김상헌 등)로 갈렸고, 척화론이 우세해 요구를 거부했다.
이 장면을 지도로 보기 →45일을 버텼으나 강화도가 함락되자 인조가 성을 나와 삼전도에서 청 태종에게 항복했다. 소현세자 등이 볼모로 끌려갔다.
왜?남한산성에는 군량이 50일 치 정도뿐이었고 구원하러 오던 군대는 모두 패했다. 왕족이 피신해 있던 강화도마저 함락되자 더는 버틸 수 없었다.
그 뒤인조는 세 번 절하고 아홉 번 머리를 조아리는 예를 올렸다. 수십만 명이 포로로 끌려갔고, 이후 청을 치자는 북벌론(효종)이 일어났다.
이 장면을 지도로 보기 →지도의 영역·경계는 개략적이며, 고대와 신라 말~후삼국 초의 세력권은 추정입니다. 그림 가운데 '역사 상상도'는 AI로 재현한 이미지로 실제 기록이 아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