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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학 농민 운동

1894 · 고부 군수의 수탈에 맞서 일어난 봉기가 전라도 전역으로 번졌다. 농민군은 전주성까지 점령했으나, 2차 봉기 때 우금치에서 일본군과 관군에 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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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면별 이야기 (4)

1894-01 (음력)

고부 봉기

고부 군수 조병갑의 수탈에 맞서 전봉준이 농민들과 관아를 점령했다.

왜?개항 뒤 쌀이 일본으로 빠져나가고 관리의 수탈은 더 심해졌다. 고부 군수 조병갑은 멀쩡한 보 아래에 새 보(만석보)를 쌓게 하고 물세를 걷는 등 횡포가 극심했다. 마침 "사람이 곧 하늘"이라는 동학의 가르침이 농민들 사이에 빠르게 퍼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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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4-04 (음력)

황토현 승리, 전주성 점령

전주성 성문으로 들어가는 동학 농민군 (역사 상상도)
전주성 성문으로 들어가는 동학 농민군 (역사 상상도) · AI 재현

"보국안민·제폭구민"을 내건 농민군이 황토현에서 관군을 무찌르고, 4월 말 전라도의 중심 전주성에 들어갔다.

왜?정부가 보낸 안핵사 이용태가 봉기 가담자를 동학교도로 몰아 탄압하자, 전봉준은 손화중·김개남과 함께 다시 일어났다(1차 봉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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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4-05 (음력)

청·일 군대의 출병, 전주 화약

정부의 요청으로 청군이 아산에 상륙하자 일본군도 인천으로 들어왔다. 농민군은 외세의 개입을 막으려 정부와 화약을 맺고 물러났다.

왜?전주가 함락되자 놀란 정부는 청에 원병을 요청했다. 청은 1885년 일본과 맺은 톈진 조약(파병 전 상호 통지와 사태 진정 후 철수를 규정)에 따라 파병 사실을 일본에 알렸고, 일본도 자국민 보호를 내세워 군대를 보냈다.

그 뒤농민군은 전라도 각지에 집강소를 두고 잘못된 정치를 고쳐 나갔다. 그러나 청·일 군대는 물러나지 않았고, 일본군은 경복궁을 점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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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4-11 (음력)

우금치 전투

일본의 내정 간섭에 맞서 다시 일어난 농민군이 공주 우금치에서 신식 무기를 갖춘 일본군·관군과 싸웠으나 크게 패했다. 전봉준은 이듬해 처형되었다.

왜?일본군이 경복궁을 점령하고 청일 전쟁을 일으키자, 농민군은 일본을 몰아내려 다시 일어났다(2차 봉기). 이번에는 남접(전봉준)과 북접(손병희)이 함께했다.

그 뒤신분제 폐지 등 농민군 요구의 일부는 같은 해 갑오개혁에 반영되었다. 동학의 정신은 천도교로 이어져 3·1 운동의 한 축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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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자료

위키백과: 동학 농민 운동 · 위키백과: 우금치 전투 · 우리역사넷: 한성 조약과 톈진 조약

지도의 영역·경계는 개략적이며, 고대와 신라 말~후삼국 초의 세력권은 추정입니다. 그림 가운데 '역사 상상도'는 AI로 재현한 이미지로 실제 기록이 아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