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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6~1871 · 프랑스와 미국 함대가 차례로 강화도를 침공했다. 흥선대원군은 이를 물리친 뒤 전국에 척화비를 세워 통상 거부를 분명히 했다.
지도로 보기천주교 박해를 구실로 프랑스 함대가 강화도를 점령했다. 양헌수가 정족산성에서 격퇴했으나, 프랑스군은 물러가며 외규장각 의궤를 약탈했다.
왜?흥선대원군은 러시아를 견제하려 프랑스 선교사와 접촉했다가 일이 틀어지고, 천주교를 배척하는 여론이 커지자 1866년 프랑스 신부 9명과 신도 수천 명을 처형했다(병인박해). 프랑스는 이를 구실로 함대를 보냈다.
그 뒤약탈당한 외규장각 의궤는 145년 뒤인 2011년, 5년마다 갱신하는 대여 방식으로 한국에 돌아왔다.
이 장면을 지도로 보기 →제너럴셔먼호 사건을 구실로 미국 함대가 강화도를 침공했다. 광성보에서 어재연 등이 끝까지 싸우다 전사했고, 미군은 통상을 얻지 못하고 물러갔다.
왜?1866년 대동강을 거슬러 올라와 통상을 요구하며 행패를 부린 미국 상선 제너럴셔먼호를 평양 관민이 불태웠다. 미국은 이를 따지고 통상을 열려고 함대를 보냈다. 1868년 독일 상인 오페르트가 대원군의 아버지 남연군의 묘를 도굴하려 한 사건으로 서양에 대한 반감도 커져 있었다.
그 뒤대원군은 전국에 "서양 오랑캐가 침범하는데 싸우지 않으면 화친하자는 것이요, 화친을 주장하면 나라를 파는 것"이라 새긴 척화비를 세웠다.
이 장면을 지도로 보기 →위키백과: 병인양요 · 위키백과: 신미양요 · 정책브리핑: 외규장각 도서 145년만에 돌아와
지도의 영역·경계는 개략적이며, 고대와 신라 말~후삼국 초의 세력권은 추정입니다. 그림 가운데 '역사 상상도'는 AI로 재현한 이미지로 실제 기록이 아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