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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3~475 · 4세기에는 백제가, 5세기에는 고구려가 한반도의 주도권을 쥐었다. 두 나라는 한강과 평양을 두고 왕이 전사할 만큼 치열하게 싸웠다.
지도로 보기미천왕이 400년 넘게 이어지던 중국 군현 낙랑군을 몰아내고 대동강 유역을 차지했다.
왜?중국이 여러 나라로 갈라져 혼란한 틈을 타, 고구려는 한반도에 남아 있던 중국 군현을 밀어내고 영토를 넓혔다.
그 뒤고구려는 이듬해(314) 대방군까지 점령하며 한반도 서북부에서 세력을 넓혔고, 남쪽의 백제와 직접 맞닿게 되었다.
이 장면을 지도로 보기 →전성기를 맞은 백제의 근초고왕이 고구려 평양성을 공격했고, 이 싸움에서 고구려 고국원왕이 전사했다.
왜?한강 유역을 기반으로 성장한 백제는 근초고왕 때 남쪽 마한 지역에 영향력을 넓히고 북쪽으로 세력을 뻗었다.
그 뒤고구려는 소수림왕 때 불교를 받아들이고(372) 율령을 반포해(373) 나라의 체제를 다시 다졌다.
이 장면을 지도로 보기 →신라가 왜의 침입을 받자 광개토대왕이 군사 5만을 보내 왜를 물리치고 낙동강 하류까지 내려갔다. 이 일로 금관가야의 세력이 크게 꺾였다.
왜?백제와 가까운 왜가 신라를 침입하자, 신라는 고구려에 도움을 청했다.
그 뒤이 일로 신라는 한동안 고구려의 영향 아래 놓였고, 금관가야가 큰 타격을 입었다. 이후 고령의 대가야가 점차 유력한 세력으로 성장했다.
이 장면을 지도로 보기 →장수왕이 압록강 가의 국내성에서 평양으로 도읍을 옮겼다. 남쪽으로 내려가려는 뜻을 분명히 한 것이었다.
왜?광개토대왕 때 넓힌 땅을 바탕으로, 장수왕은 한반도 남쪽으로 세력을 넓히려 했다.
그 뒤고구려의 남진에 위협을 느낀 백제와 신라는 433년 동맹을 맺었다(나제 동맹).
이 장면을 지도로 보기 →장수왕의 고구려군이 백제 도읍 한성을 함락하고 개로왕을 죽였다. 백제는 남쪽 웅진(공주)으로 도읍을 옮겼고, 고구려는 한강 유역을 차지했다.
왜?평양으로 도읍을 옮긴 고구려는 남진을 본격화했다. 나제 동맹이 있었지만 고구려의 공세를 막지 못했다.
그 뒤고구려는 남양만에서 죽령에 이르는 지역까지 내려왔다. 백제는 538년 성왕 때 다시 사비(부여)로 도읍을 옮기고 부흥을 꾀했다.
이 장면을 지도로 보기 →위키백과: 삼국 시대 · 위키백과: 근초고왕 · 위키백과: 광개토대왕 · 위키백과: 장수왕
지도의 영역·경계는 개략적이며, 고대와 신라 말~후삼국 초의 세력권은 추정입니다. 그림 가운데 '역사 상상도'는 AI로 재현한 이미지로 실제 기록이 아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