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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51~562 · 백제와 신라가 힘을 합쳐 고구려에게서 한강 유역을 되찾았지만, 곧 신라가 백제 몫까지 차지했다. 한강을 얻은 신라는 중국과 직접 통하는 바닷길을 확보했다.
지도로 보기백제 성왕과 신라 진흥왕이 함께 고구려를 공격했다. 백제는 한강 하류를, 신라는 한강 상류를 차지했다.
왜?6세기 들어 고구려는 귀족들의 권력 다툼으로 흔들렸다. 백제 성왕은 한강 유역을 되찾으려 했고, 신라 진흥왕은 이를 영토를 넓힐 기회로 보았다.
이 장면을 지도로 보기 →진흥왕이 백제가 되찾은 한강 하류마저 빼앗았다. 120년 넘게 이어진 백제와 신라의 동맹이 깨졌다.
왜?한강 유역은 땅이 기름지고, 서해를 건너 중국과 직접 교류할 수 있는 요충지였다. 진흥왕은 동맹보다 이 땅을 택했다.
그 뒤신라는 서해안의 당항성을 통해 중국과 직접 통하게 되었다. 백제와 신라는 이후 100년 넘게 적이 되었다.
이 장면을 지도로 보기 →554년 관산성(옥천) 전투에서 백제가 크게 패했고, 성왕도 신라군 복병의 기습을 받아 전사했다.
왜?한강 하류를 빼앗긴 백제는 대가야·왜와 함께 신라를 공격했다.
그 뒤성왕의 전사로 백제는 큰 타격을 입었고, 신라의 한강 지배가 굳어졌다.
이 장면을 지도로 보기 →신라가 고령의 대가야를 무너뜨려 가야 여러 나라가 모두 신라에 흡수되었다.
왜?한강 유역까지 차지한 신라는 남쪽에 남은 가야 세력을 아우르려 했다.
그 뒤진흥왕은 넓힌 영토에 순수비를 세웠다. 함경도의 마운령비·황초령비가 신라의 동북쪽 경계를 보여 준다.
이 장면을 지도로 보기 →위키백과: 진흥왕 · 위키백과: 관산성 전투 · 위키백과: 대가야
지도의 영역·경계는 개략적이며, 고대와 신라 말~후삼국 초의 세력권은 추정입니다. 그림 가운데 '역사 상상도'는 AI로 재현한 이미지로 실제 기록이 아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