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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89 · 왕위 다툼으로 중앙 정치가 흔들리던 신라에서 전국적인 농민 봉기가 일어나고, 지방 호족이 자라나 후삼국 시대로 이어졌다.
지도로 보기진성여왕 때 나라 살림이 바닥나 세금을 독촉하자 사벌주(상주)에서 원종과 애노가 봉기했다. 이를 시작으로 전국 곳곳에서 봉기가 이어졌다.
왜?780년 이후 신라에서는 진골 귀족 사이의 왕위 다툼이 이어지며 왕권이 약해졌다. 지방 통제도 느슨해지고 농민의 삶은 어려워졌다.
그 뒤889년 이후 지방의 주·군은 세금을 보내지 않았다. 지도에서 신라 땅은 그대로지만 점선으로 옅게 칠한 부분은 "이름만 신라"인 곳이다. 지방에서는 성주·장군을 자칭하는 호족이 자라났다.
이 장면을 지도로 보기 →892년 견훤이 무진주(광주)를 차지하고 그 일대 군현을 거느렸다. 아직 드러내 놓고 왕을 칭하지는 않았다. 같은 해 궁예는 북원(원주)의 호족 양길 밑으로 들어가 강원 남부를 공략하기 시작했다. 신라는 여전히 한반도 남부 전체의 주인이었지만, 실제로 명령이 통하는 곳은 경주 일대뿐이었다.
왜?중앙의 통제가 풀리자 군사력을 가진 사람이 곧 지방의 주인이 되었다. 견훤은 상주 출신으로 서남해 방비를 맡던 신라 군인이었고, 궁예는 신라 왕족 출신이라 전하는 승려로 죽주의 기훤을 거쳐 양길에게 몸을 맡겼다.
그 뒤894년 최치원이 시무십여조를 올리고 진성여왕이 이를 받아들였지만 개혁은 실현되지 못했다. 궁예는 894년 명주(강릉)에 들어가 장군을 칭했고, 895년 철원 등을 차지했으며, 898년 송악을 도읍으로 삼았다. 899년에는 옛 주인 양길까지 꺾었다. 지도의 세력권은 사료로 경계를 그을 수 없어 모두 추정이다.
이 장면을 지도로 보기 →위키백과: 원종·애노의 난 · 위키백과: 진성여왕 · 위키백과: 견훤 · 위키백과: 궁예
지도의 영역·경계는 개략적이며, 고대와 신라 말~후삼국 초의 세력권은 추정입니다. 그림 가운데 '역사 상상도'는 AI로 재현한 이미지로 실제 기록이 아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