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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60~676 · 신라는 당과 손잡고 백제와 고구려를 무너뜨렸다. 이어 한반도 전체를 지배하려던 당과 싸워 물리치고, 대동강 남쪽을 하나로 아울렀다.
지도로 보기김유신의 신라군 5만이 황산벌에서 계백의 결사대 5천을 물리쳤고, 당나라 군대는 바다를 건너 기벌포로 들어왔다. 사비성이 함락되고 의자왕이 항복했다.
왜?백제의 공격으로 대야성 등을 잃은 신라는 고구려에 도움을 청했다가 거절당하자, 김춘추가 당으로 건너가 동맹을 맺었다(648).
그 뒤복신·도침·흑치상지 등이 부흥 운동을 일으켰고, 왜가 수군을 보냈으나 663년 백강 전투에서 나당 연합군에게 패했다. 당은 백제 옛 땅에 웅진도독부를 두었다.
이 장면을 지도로 보기 →연개소문이 죽은 뒤 그 아들들이 권력을 두고 다투자, 신라와 당이 함께 평양성을 함락했다. 보장왕이 항복하며 고구려는 700년 넘는 역사를 마쳤다.
왜?거듭된 전쟁으로 국력이 약해진 데다, 연개소문의 아들들이 서로 싸우며 일부가 당에 항복했다.
그 뒤당은 평양에 안동도호부를 두고 고구려 옛 땅을 직접 다스리려 했다. 검모잠·안승 등이 고구려 부흥 운동을 일으켰고, 신라는 이를 지원했다.
이 장면을 지도로 보기 →당이 백제와 고구려의 옛 땅은 물론 신라까지 지배하려 하자, 신라는 당과 싸웠다. 675년 매소성에서 당 육군을, 676년 기벌포에서 당 수군을 물리쳐 당 세력을 몰아냈다.
왜?당은 백제 땅에 웅진도독부, 고구려 땅에 안동도호부를 두고, 신라에도 계림도독부를 두어 한반도 전체를 지배하려 했다. 신라는 670년 당과의 전쟁에 나섰다.
그 뒤당은 안동도호부를 요동으로 옮겼다. 신라는 대동강에서 원산만에 이르는 선 남쪽을 하나로 아울렀다.
이 장면을 지도로 보기 →위키백과: 황산벌 전투 · 위키백과: 백제의 멸망 · 위키백과: 고구려의 멸망 · 위키백과: 나당전쟁
지도의 영역·경계는 개략적이며, 고대와 신라 말~후삼국 초의 세력권은 추정입니다. 그림 가운데 '역사 상상도'는 AI로 재현한 이미지로 실제 기록이 아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