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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7 · 박종철 고문치사와 4·13 호헌 조치에 맞선 전국적 항쟁으로 대통령 직선제를 얻어냈다.
지도로 보기6월 10일 전국 곳곳에서 국민대회가 열렸다. 시위 중 최루탄에 맞은 이한열의 소식이 알려지며 항쟁은 더 커졌다.
왜?대통령 간선제로 집권한 전두환 정부에 맞서 직선제 개헌 요구가 커졌다. 1987년 1월 서울대생 박종철이 경찰 조사 중 물고문으로 숨졌는데, 경찰은 "책상을 탁 치니 억 하고 죽었다"며 사건을 축소하려 했다. 4월 13일 전두환은 개헌 논의를 막는 호헌 조치를 발표했다.
이 장면을 지도로 보기 →정부가 대통령 직선제 개헌을 받아들였다. 지금의 헌법이 이해 10월에 만들어졌다.
왜?"넥타이 부대"로 불린 회사원들까지 시위에 합류하며 항쟁이 전국으로 번졌다. 이듬해 서울 올림픽을 앞둔 정부로서는 군을 동원한 진압도 부담스러웠다. 여당 대표 노태우가 직선제를 받아들이는 선언을 했다.
그 뒤12월 대선에서 야권 후보들이 단일화에 실패하면서 노태우가 당선되었다.
이 장면을 지도로 보기 →지도의 영역·경계는 개략적이며, 고대와 신라 말~후삼국 초의 세력권은 추정입니다. 그림 가운데 '역사 상상도'는 AI로 재현한 이미지로 실제 기록이 아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