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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33~1449 · 세종 때 압록강 상류에 4군, 두만강 하류에 6진을 설치했다. 오늘날 국경선의 바탕이 이때 마련되었다.
지도로 보기1433년 최윤덕의 여진 정벌을 계기로 압록강 상류의 방어를 강화했다. 앞서 1416년 설치된 여연군에 자성·무창이 더해지고, 1443년 우예군이 설치되며 4군 체제가 갖춰졌다.
왜?압록강과 두만강 유역의 여진은 자주 국경을 넘어와 약탈했다. 1432년 여진 세력이 여연을 습격하자, 세종은 이듬해 최윤덕을 보내 파저강 일대의 여진 세력을 정벌했다. 막는 데 그치지 않고 강을 경계로 한 국경을 확보하려는 뜻이었다.
이 장면을 지도로 보기 →두만강 하류에 종성·온성·회령·경원·경흥·부령 6진을 설치하고, 남쪽 백성을 옮겨 살게 했다(사민 정책).
왜?두만강 유역은 이성계 선조들의 근거지이자 옛 능묘가 있던 지역이어서 조선 왕실에 특별한 의미가 있었다(능묘는 1410년 함주로 옮겨졌다). 1433년 여진 내부 다툼으로 이 지역이 비자, 세종은 김종서를 보내 진을 세웠다.
그 뒤사람이 살아야 지킬 수 있기에 남쪽 백성을 옮겨 살게 하고(사민), 토착민을 관리로 썼다(토관). 4군은 유지와 방어가 어려워 1455~1459년에 차례로 폐지되었지만, 압록강·두만강을 잇는 오늘날 국경선의 틀이 이때 잡혔다.
이 장면을 지도로 보기 →위키백과: 4군 6진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사군 · 세종실록: 여연 침입 보고(1432) · 우리역사넷: 4군 6진 · 태종실록 태종 10년 10월 28일
지도의 영역·경계는 개략적이며, 고대와 신라 말~후삼국 초의 세력권은 추정입니다. 그림 가운데 '역사 상상도'는 AI로 재현한 이미지로 실제 기록이 아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