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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88~1394 · 요동 정벌에 나선 이성계가 위화도에서 군대를 돌려 실권을 잡았고, 1392년 조선을 세웠다. 1394년 한양으로 천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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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이 철령 이북 땅을 요구하자 고려는 요동 정벌에 나섰다. 압록강 위화도에 이른 이성계는 "작은 나라가 큰 나라를 거스를 수 없다" 등을 들어 군대를 돌렸다.
왜?명이 옛 쌍성총관부 땅인 철령 이북을 자기 땅이라며 철령위를 두겠다고 통보했다. 우왕과 최영은 요동 정벌로 맞섰지만, 이성계는 작은 나라가 큰 나라를 치는 일, 여름철 출병, 왜구가 빈틈을 노릴 위험, 장마에 활이 풀리고 병이 도는 문제(4불가론)를 들어 반대했다.
이 장면을 지도로 보기 →회군한 이성계가 개경을 점령하고 최영을 몰아냈다. 이후 신진 사대부와 손잡고 개혁을 밀어붙였다.
왜?왕명을 어기고 군대를 돌린 이상, 이성계에게는 정권을 잡는 길밖에 남지 않았다.
그 뒤최영은 유배 뒤 처형되고 우왕도 쫓겨났다. 이성계 세력은 과전법(1391)으로 토지에서 세금을 거둘 권리(수조권)를 정비해 관료들에게 나누어 주며 새 정권의 경제 기반을 마련했다.
이 장면을 지도로 보기 →이성계가 왕위에 올라 고려가 474년 만에 막을 내렸다. 이듬해 국호를 조선으로 정했다.
왜?신진 사대부는 고려 왕조를 유지하며 고치자는 온건파(정몽주 등)와 새 왕조를 세우자는 급진파(정도전 등)로 갈렸다. 1392년 이방원이 선죽교에서 정몽주를 제거하면서 걸림돌이 사라졌다.
이 장면을 지도로 보기 →1394년 도읍을 한양으로 옮기고 궁궐과 종묘 조성에 착수했다. 이듬해 경복궁의 중심 전각과 종묘가 완공되었다. 이후 600년 넘게 이곳이 수도가 된다.
왜?개경은 고려 왕족과 귀족의 근거지였다. 한양은 한반도 가운데에 있고 한강을 끼고 있어 교통과 세금 운반에 유리했으며, 풍수로도 명당으로 꼽혔다.
그 뒤정도전이 도성 설계를 맡았다. 경복궁의 중심 전각과 종묘는 1395년에 완공되었고, 도성 성곽은 1396년에 쌓았다.
이 장면을 지도로 보기 →위키백과: 위화도 회군 · 위키백과: 조선 · 우리역사넷: 과전법 · 궁능유적본부: 궁궐의 연표
지도의 영역·경계는 개략적이며, 고대와 신라 말~후삼국 초의 세력권은 추정입니다. 그림 가운데 '역사 상상도'는 AI로 재현한 이미지로 실제 기록이 아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