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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권 피탈

1905~1910 · 을사늑약으로 외교권을, 정미7조약으로 내정과 군대를 빼앗긴 끝에 1910년 나라를 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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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면별 이야기 (4)

1905-11-17

을사늑약

일본군이 궁궐을 에워싼 가운데 외교권을 빼앗는 조약이 강제되었다. 고종은 끝내 서명하지 않았다. 통감부가 설치되었고 전국에서 의병이 일어났다.

왜?러일 전쟁에서 이긴 일본은 열강의 묵인 아래 대한제국을 보호국으로 만들려 했다. 이토 히로부미가 군대를 앞세워 대신들을 위협했고, 이완용 등 다섯 대신(을사오적)이 찬성했다.

그 뒤장지연은 "시일야방성대곡"을 썼고 민영환은 자결로 항거했다. 최익현·신돌석 등이 의병을 일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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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7

헤이그 특사와 고종 퇴위

고종이 헤이그 만국평화회의에 특사를 보내 을사늑약의 부당함을 알리려 했다. 일본은 이를 구실로 고종을 물러나게 하고 군대를 해산시켰다. 해산된 군인들이 의병에 합류했다.

왜?고종은 을사늑약이 무효임을 국제 사회에 알리려 했다. 이준·이상설·이위종이 헤이그로 갔지만, 외교권이 없다는 이유로 회의장에 들어가지도 못했다.

그 뒤해산 군인이 합류한 의병은 13도 창의군을 꾸려 서울 진공 작전(1908)을 폈으나 실패했다. 일본은 1909년 "남한 대토벌"로 의병을 짓밟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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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9-10-26

안중근 의거

안중근이 하얼빈역에서 초대 통감 이토 히로부미를 처단했다.

왜?의병 활동을 하던 안중근은 연해주에서 동지들과 손가락을 잘라 맹세했다(단지 동맹). 이토가 러시아 재무장관을 만나러 하얼빈에 온다는 소식을 듣고 거사를 준비했다.

그 뒤안중근은 법정에서 이토의 죄 15가지를 밝혔고, 1910년 3월 뤼순 감옥에서 순국했다. 감옥에서 쓰던 "동양평화론"은 끝맺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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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0-08-29

경술국치

한일병합조약이 공포되어 대한제국이 사라지고 조선총독부의 식민 통치가 시작되었다.

왜?일본은 1909년 사법권, 1910년 경찰권까지 빼앗아 저항할 수단을 모두 없앤 뒤 병합을 밀어붙였다. 친일 단체 일진회는 "합방 청원"을 내며 앞장섰다.

그 뒤조선총독부는 헌병 경찰을 앞세운 무단 통치를 폈고, 토지 조사 사업(1910~1918)으로 많은 땅이 총독부와 일본인에게 넘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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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자료

위키백과: 을사조약 · 위키백과: 헤이그 특사 · 위키백과: 안중근 · 위키백과: 한일 병합 조약

지도의 영역·경계는 개략적이며, 고대와 신라 말~후삼국 초의 세력권은 추정입니다. 그림 가운데 '역사 상상도'는 AI로 재현한 이미지로 실제 기록이 아닙니다.